
오늘 글 요약
영화 혹은 스포츠에서 예전 영상을 보다보면
이 배우가 이 영화에? 혹은 이 선수가 이 팀에?
라는 생각을 하게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 속에서도 이런 일은 꽤 비일비재하게 나타나는데
특히 임진왜란 이전 조선 최대의 위기였던 전쟁에서도
이런 상황이 그대로 나온다

건주여진의 재앙, 야인 여진의 과부제조기, 해서 여진의 종말 패왕 세종
세종 시기 조선은 발해 멸망 이후 처음으로
함경도를 완전히 영토화하며 두만강을 최종 국경으로 삼게된다
문제는 21세기에도 함경도는 곱창난 기후, 환경으로 인구가 부족한데
조선 시대 때는 거의 서부개척기 미국만큼 인구가 부족한 상황
그러기에 지켜야할 방위 거점은 넓은데
그걸 커버할 병력이 없는 상황에 처한다

조선 전기 국방사 요약(우용곡의 만화로 추정)
문제는 태종 때 대여진 정책의 실패로
조선 인근, 특히 두만강 변의 여진족이 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것
그래서 세조 시기부터는 걍 다 죽여버리면 그만아님?
이라는 스탠스로 접근해서
진짜 말그대로 개기는 여진족의 사지를 분쇄해버렸고
심지어 네임드 여진 추장인 이만주를 찢어죽이버렸을 정도

참고로 이 건주위가 훗날 청나라를 세우게 된다
성종 시기에는 불온한 움직임을 보인 건주 여진을 상대로
예방 전쟁 겸 압록강을 넘어서
아예 간도까지 진격해 영토화 시도까지 했고
심지어 연변, 훈춘까지 진격해서 알박기를 시도할 정도
그러나 조선의 공세적인 정책은 모든 여진의 불신을 사게 되었고
결국 중종 시기에는 해서, 야인 여진과 조공관계가 단절되어
사실상 압록-두만강 이북의 여진족 정세를 파악하기 매우 힘들어진다

당시 조선의 문란해진 군사행정을 기습한 여진족
문제는 성종 시기 이후 조선의 군사 행정은
상당히 문란해져 있던 상황
그러던 1583년 선조 시기
함경도 6진의 경원 인근에서 우을기내가 이끄는 소규모 여진족이
흔한? 식량 약탈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 수비군이 패했고
이후 인근 여진족들은 조선 이거 좆밥아닌가?라는 인식이 퍼지게 된다

그리고 이 때 6진 인근의 여진족을 규합하는 네임드가 탄생하니
그 사람이 바로 니탕개이다
이 뱀같은 새끼는 처음에는 조선에 귀화한 척 하며
6진을 드나들며 조선의 국경 병력을 체크했고
대충 이 새끼들은 좆밥이다! 라는 자신이 서자
바로 조선의 죽통을 후리기 위해 거병한 것

말 그대로 좌우에서 펀치를 때려대는 꼴
이후 니탕개에 호응해서 무려 여진족 1만 기병
보병까지 합치면 3만 정도로 추정되는 병력이
조선의 6진 양 사이드, 특히 경원진을 두들기기 시작한다
근데 경원진의 조선군 병력은 고작 435명이었는데도
이들은 오히려 니탕개군의 수급 40개를 취할 정도로
여진족을 일시적으로 후퇴시키는데 성공한다

여진족 시점에서 보는 신립
이후 니탕개군은 다시 2차 공격을 가하는데
이 때 여진족의 후방에서 한 인물이 등장하니
바로 온성부사 신립이다
이 미친 아저씨는 잡히는 수십명의 적을
전부 쳐죽이며 포위망을 뚫어버렸고
결국 경원진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형이 왜 화폐에 박제되었는지 이유를 보여줄께
니탕개가 경원진을 공격한 지 10일 뒤
한양에 이 소식이 전해진다
이에 선조는 건국 이래 최대의 외침 사태임을 판단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동하여 함경도 내에서 틀어막기로 결정한다
이에 병조 판서인 이이는 직접 물자와 병력을 뽑아내었고
정예병 8천명을 함경도로 급파한다

문제는 이 병력이 함경도로 올라가려면 시간이 걸렸고
그동안은 함경도 내 소규모 병력이 만 단위의 적을 막아내야하는 상황
2월 9일 여진족 연합은 두만강에 돌출된 훈융진을 공격하는데
당연히(?) 이곳을 지키는 조선군은 달랑 135명
그러나 성 4면이 모두 포위되고, 적의 수가 1만명인데도
이들은 끝까지 버텼지만 결국 함락 직전에 몰리는데
이 온성부사 앞에서 깝치지 마라!
그런데 이 때 또 온성부사 신립이 조선군 기병대를
이끌고 후방에 입갤
나노머신화살 한 발로 적장 대가리를 뚫어버렸고
말에 탄 채 화살로 수십명의 여진족을 쏘아 죽인다
이걸 본 여진족들이 산맥을 타고 도망가자
오히려 두만강을 넘어 이들을 추격해 일부 부락을 불태우고 돌아온다
이후 중앙군 선발대가 도착하자
신립은 세 방향으로 나누어 두만강을 넘어서
530개 굴을 불태워버리고 수백개의 모가지를 따오는 전과를 올리자
이에 쫄은 여진족들이 침공을 멈추며
일단 경원진에서의 1차 공세는 소강상태에 접어든다
그리고 점차 경기도 이남 5도에서 병력들이 도착했고
조정의 대응도 신속하게 이뤄져 지휘체계를 재편하고
빠른 물자 보급, 특히 화약무기를 대거 올려보낸다

그러나 이 모습을 본 여진족은 오히려 하나로 뭉치며
사실상 6진 인근의 모든 여진족이 니탕개 휘하에 모이게 된다
이후 5월 5일, 니탕개가 이끄는 2만 병력이
6진 최북단 지역인 종성진을 공격하며 2차 공세가 시작된다
다만 3개월 동안 조선은 이곳에 신기전, 승자총통 같은
화약무기를 도배해놔서 쉽게 뚫리지 않았고
여진족 입장에서는 씨발 소리가 절로 나오는 신립이
또 기병대를 이끌고 후방에 입갤한다
실록 피셜로 혼자서 적의 진영으로 들어가
수십명을 쳐죽이며 돌격할 때마다 그대로 길이 생길 정도
여기에 조선 측 스파이?가 여진 내 반 니탕개 세력을 감아서
니탕개 본진을 레이드 하라고 사주해서 결국 니탕개는 철수한다

넌 이미 죽어있다
그 와중에 니탕개와 투탑 체제를 형성하고 있던
또다른 여진 연합 수장이었던 우을기내는
회령 인근을 공격하는데 이 때 조정에서 보낸
정언신과 교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 웬 계약직 군무원 아저씨 한 명이 엄청난 활약을 하니
그 사람은 바로 (훗날) 충무공 김시민이다
※ 당시 상관에게 들이박고 벼슬 버리고 낙향했다가
정언신 휘하의 계약직?으로 참가한 상황

이 떄 조선이 보여준 좆간질은 가히 예술의 영역
아무튼 메인 전선인 종성진은 화약무기
특히 승자총통이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적을 분쇄했고
이에 니탕개는 3만명을 또 모아서 동관진을 집중공격했지만
이번에도 조선의 스파이 작전이 통해서
투을지라는 여진족에게 공세 정보를 입수하여
방어 라인을 쭉 깔아둔 덕분에 어렵지 않게 방어한다

모든 공격이 막힌 니탕개는 추하게 조선에게 타협안을 제시한다
근데 조선이 이를 좆까버리자
아예 항복하겠다는 제안까지 걸었지만
조선은 애초에 난을 시작한 주동자인 니탕개를 잡아 죽이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니탕개는 마지막으로 한타싸움을 걸기로 결정하니
7월 19일, 2만 병력을 이끌고 방원보를 공격한 것이다

그러나 방원보는 성 전체가 강과 하천으로 둘러쌓인 지형이라
방어하기 매우 쉬운 곳이었다.
결국 방원보까지 함락을 시키지 못하며
주변 여진족들이 니탕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조선에 대한 공격을 완전히 멈춤으로써
니탕개의 난은 종료된다

다만 주동자인 니탕개는 아예 만주 저편으로 튀어버려서
사실상 생포에 실패했지만
처음 난에 불을 붙인 우을기내는 아직 살아있던 상황
이 때 한 건원보의 권관의 유인책으로
우을기내는 권원보 근처로 유인당하고
거기서 우을기내가 만난 건원보 권관은...

어 형이야

씨발 좆됐네

그렇다
우을기내를 유인해서 생포한 건원보의 권관은 바로 충무공 이순신
가는 족족 충무공 김시민, 충무공 이순신을 만나는
우을기내 입장에선 진짜 억까가 따로 없을 정도
암튼 우을기내는 이순신에게 목이 잘리며
니탕개의 난은 찐으로 종식되게 된다

당연히 이번 전쟁의 슈퍼 아이돌은 신립이었다
조선군이 위기에 처한 순간마다 기병대를 이끌고 나타나
명, 조선이 두려워하던 여진족을
한 명의 존재로 모조리 썰어버리며 당대의 맹장이 된다
당연히 한양에 입성했을 때 선조가 직접 마중나가서
그에게 자기가 입던 곤룡포를 벗어 덮어줄 정도로
신립의 위상은 하늘을 뚫고 대기권까지 치솟는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양반은
기병대장, 선봉장으로선 탁월했지만, 최고 지휘관으로선 실격이었는데
임진왜란 직전, 선조의 왜란 방어 회의에서
왜구는 수군이 강하니, 조선 수군 없애죠?
라는 병신 같은 발언을 일삼았는데
당시 이를 결사 반대한 것이 바로 전라 좌수사 이순신이다

아무튼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연히 조선의 마리아노 리베라였던 신립은
선조에게 직접 상방검까지 하사 받으며
충청도에서 일본군을 막기 위해 출격!!!!
하지만 500년이 지난 현재까지 치열한 논쟁이 되는
탄금대 전투에서 꼴아박고 결국 남한강에 뛰어들어 자결한다 (다만 탄금대 전투의 패배를 신립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약간 이 양반이랑 결이 비슷한 김시민 장군
김시민은 이 때의 공으로 재시험쳐서 들어간 무과에서
전체 4등을 받아 단숨에 품계를 점프한 종 6품에 제수된다
그러나 성질이 워낙 불같았던지라
여기서도 무려 병조판서(국방부장관)에게 들이 박고
빡쳐서 모자를 벗어 던지고 밟으며 욕지거리를 하고
다시 벼슬 버리고 낙향한다

??? : 조선군이 모두 내 수준이었다면 일본까지 쳐들어 갔을 것
근데 능력은 진짜 확실했던 건지
병조판서에서 그 짓을 해놓고도 다시 벼슬길에 올랐고
1591년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들어가는 길목인
진주목의 판관으로 제수된다
그리고 임진왜란 발발 후 그는 일본까지 알려질 정도의
전설을 쓰게 된다

우을기내를 생포하며 공을 세운 이순신
그러나 상관인 김우서가 보고 없이 행동했다고 억지를 부려서
결국 전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함경도 조산보 만호, 녹둔도 만호에 임명된다
그리고 녹둔도 전투에서 공격을 시도한 여진 추장을 잡는 등
공적을 세웠지만, 상관인 이일에게 또 모함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한다

야한 인재 냄새를 풀풀 풍기는 구만
그러나 이 과정을 장계로 꾸준히 지켜본 선조는
니탕개의 난 때 같이 참전해서 공적을 세우는 걸 본
정언신의 추천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조선사에 유례 없는
초고속 승진으로 전라좌수사에 임명하는데
대충 대위에서 중장으로 승진 시킨 셈으로
그만큼 이순신을 포텐 -9 유망주로 봤다는 증거

그리고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이후 행적은 생략한다

즉 니탕개의 난은 임진왜란 이전
조선이 맞닥뜨린 최대의 침공 규모였지만
북방에서 미쳐 날뛰던 조선의 뮈라인 신립
한양에서 완벽하게 물자, 병력을 수급해준 이이
전시가 아닐 때 갑자기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선조
그리고 훗날 충무공 시호를 받는 2명의 장수가 포진되어 있어
여진족 3만명이라는 미증유의 난을
쉽게 막았던 아이러니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

참고로 김시민 장군은 육상의 이순신이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엄청난 공적을 세운 인물이지만
전쟁이 끝난 후 받은 공신위는
고작? 선무공신 2등이다
그럼 어떤 인물이 선무공신 1등이냐 하면
이순신, 권율 그리고

씹균이다

병신
-끝-
출처: https://www.fmkorea.com/972670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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