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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미스테리


[괴담]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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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할아버지의 집은 외진 시골이었다. 주변에 또래라곤 건너편 집에 사는 경석이 형뿐이었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았던 경석이 형은 마을에 내가 들어오게 되자 동생이 생겼다며 정말 좋아했고, 나도 경석이 형을 친형처럼 잘 따랐다.


우리는 항상 집 앞에 있는 산에 올라가 놀곤 했다. 놀이라고 해봐야 별거 아닌 것들이었다. 누가 돌을 멀리 던지나 시합하기, 산에서 숨바꼭질하기, 비밀기지에서 놀기. 뭐 이런 게 전부였다.

  

비밀기지는 종이박스 같은 폐품을 모아 만든 것이었는데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 둘만의 비밀이었다. 그날도 난 경석이 형과 함께 산에서 놀고 있었다. 아마 여기저기를 한참 뛰어다니다가 산 중턱에 누워 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그때 산 정상에서 펄럭이는 파란 천을 보게 되었다. 파란 천은 천의 중심에서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거칠고 빠르게 펄럭였다. 천은 크게 원을 그리며 공중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움직임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경석이 형에게 파란 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형아. 저거 봐봐라. 되게 신기하지?”

“응? 뭔데?”


그늘에서 쉬던 경석이 형은 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없는데?”

“저어기. 파란 천이 빙글빙글 돌고 있잖아.”


손 그늘까지 만들어 유심히 보던 경석이 형은 못 찾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던 경석이 형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오늘 밖에 나오면 안 된다고 했는데.”

“왜?”

“몰라. 너희 할아버지가 말씀 안 하셨어?”

“할아버지? 아침에 없길래 그냥 나왔는데.”


경석이 형은 혼날 것 같다면서 머리를 벅벅 긁더니 내 손을 잡고 산을 내려왔다. 산 초입에는 마을 어른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모여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경석이 형네 부모님도 함께였다.


“너희들! 어딜 갔다 오는 거냐!”


할아버지는 우리를 보더니 버럭 화를 냈다. 난 그때 할아버지의 화난 모습을 처음으로 봤다. 어린 나에겐 그것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아이고, 그만해요. 무사히 내려왔으니까 됐잖아요.”


할머니와 경석이 형네 부모님이 할아버지를 말렸다.


“너희 혹시 산에서 뭔가를 봤느냐?”


어쩐지 낯선 할아버지의 모습에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산에서 파란 천을 보았다. 하지만 할아버지에게 혼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어 그 사실을 숨겼다.


눈치 빠른 경석이 형도 아무것도 못 봤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말했다.


“집에 가자. 오늘은 도깨비 축제날이다. 어린아이는 절대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나는 할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다. 나와 경석이 형은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도깨비. 할아버지의 도깨비란 말에 난 할머니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예부터 도깨비는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다고 한다. 도깨비는 본인이 원한다면 어떤 모습으로든 둔갑할 수 있는데, 평소에는 파란 불꽃의 형태로 떠돈다고 한다. 하지만 이조차 본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할머니는 파란 도깨비불을 보게 되는 것은 좋지 않은 징조이며, 선명하게 볼수록 더욱 좋지 않다고 말했다. 도깨비는 자신을 본 사람에게 못된 장난을 치기 때문이었다.

  

만약 도깨비가 기분이 좋지 않을 경우 크게 다칠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죽는 일까지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도깨비는 주로 밤에 나타나니 일찍 자면 문제없을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집에 도착하니, 집 안 곳곳에 따끈한 팥죽이 놓여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띄었다.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나를 안방으로 밀어 넣은 할아버지는 TV를 틀어주고는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다. 할머니도 그날따라 뭔가 바쁜 것 같았다.


나는 문 닫힌 안방에 혼자 멍하니 앉아있었다. TV에선 좋아하던 만화영화도 하지 않았고 온통 재미없는 프로그램만 나왔다. 따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방 밖에서 누군가의 거친 발소리가 들려왔다.

  

쿵쿵거리는 발소리는 내가 아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발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발소리는 안방 앞에서 멈춰 섰다.


쾅쾅쾅


누군가가 거칠게 방문을 두드렸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동네 어른들, 경석이 형…. 최소한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 저 사람은 누구지?’

  

문 밖에 있는 낯선 존재로 인해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쾅쾅쾅


바깥에 있는 낯선 존재는 다시 한 번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누구세요?”


겁을 집어먹은 나는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할애비다. 나가야 하니까 어서 나오너라.”


할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깥의 존재가 할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나는 문을 살짝 열어 밖을 내다보았다. 할아버지는 신발을 고쳐 신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서 나오라며 내게 손짓했다. 아까는 나오지 말라더니 어딜 가는 거지? 궁금해진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 어디 가?”

“경석이가 큰일 났다. 가봐야 하니까 어서 나와라.”


경석이 형이 큰일 났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나도 할아버지를 따라 서둘러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섰다. 마당을 지나 대문 밖으로 나서려는데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가는 거냐.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엄청난 위화감이 들었다. 당시 어린 나라도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고 있었다. 뒤를 돌아본 나는 놀라 자빠질 뻔했다. 난 분명 할아버지를 따라 집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뒤에서 또 다른 할아버지가 싸리 빗자루를 모아놓고 태우고 있는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두 명이었다. 대문 밖에 있는 할아버지, 마당에 있는 할아버지.


평소 온순하며 사람을 잘 따르는 누렁이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향해 미친 듯이 짖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두 할아버지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문 밖에 있는 할아버지가 나를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러냐? 어서 나오지 않고,”


마당에 있는 할아버지가 말했다.


“어서 들어가라!”


난 그 자리에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내 수상쩍은 행동에 마당에 있는 할아버지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했다.


“너 설마…. 도깨비를 본 거냐!”


대문 밖에 있는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경석이가 큰일 났다니까!”


그래 도깨비다. 도깨비. 분명 도깨비가 할아버지로 둔갑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도깨비지? 누가 진짜 할아버지지?

  

너무 무섭고 혼란스러웠다. 두 할아버지는 내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지만 더 이상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라디오의 볼륨을 서서히 줄이듯 누렁이의 짖는 소리도 점점 작아지며 들리지 않게 되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마당에 있던 할아버지는 안 되겠다는 듯 급히 다가오며 내게 손을 뻗었다.


그때 마당 할아버지의 얼굴이 기괴한 형상으로 녹아내렸다. 마치 당장이라도 흘러서 땅에 떨어질 것처럼 녹아내리던 얼굴은 이내 뒤섞이더니 아무런 형체가 없는 살덩어리로 변해버렸다. 그 얼굴은 마치 달걀귀신같았다.


“으아악!”


놀란 나는 달걀귀신의 손을 뿌리쳤다. 나는 문밖의 할아버지도 무시한 채 달아났다.


평소 경석이 형과 뛰놀던 익숙한 산길을 달렸다. 숨이 가빠 왔지만 공포에 질린 내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경석이 형과 함께 만든 비밀기지를 향해 달렸다. 그곳은 나와 경석이 형 외엔 아무도 모르는 곳이었다. 거기라면 분명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비밀기지에 다다른 나는 기지 안으로 몸을 숨겼다. 비록 폐지로 얼렁뚱땅 만들었지만, 수풀로 밖을 덮어놓아 밖에선 제법 찾기 힘든 곳이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안도감이 들자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울음소리가 귀신에게 들릴지도 몰랐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울었다.


그러다 지쳐 잠든 것 같았다. 눈을 떠보니 주변은 온통 새카만 어둠뿐이었다. 밤이 찾아온 것 같았다. 무서워진 나는 기지 밖으로 기어 나왔다.

  

풀벌레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앞이 한 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새까만 천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깊은 산중이라도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 주변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기다렸다.

  

평소 밤하늘을 수놓은 별조차 어딜 갔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온통 어둠뿐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정적을 깨는 발소리가 산중에 울려 퍼졌다. 발소리가 들리자 풀벌레의 울음소리도 멈추었다. 산속을 걸어 다니는 남자는 끅끅거리며 기분 나쁘게 웃음을 참고 있었다. 겁을 집어먹은 나는 다시 비밀기지로 기어들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발소리는 비밀기지의 주변을 맴돌았다. 마치 나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숨소리도 죽인 채 발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웃음을 참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내게 가까워질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나는 이 심장소리마저 밖의 존재에게 들킬지도 밖에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이나 주변을 맴돌던 발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그와 동시에 끅끅거리는 웃음 참는 소리도 멀어졌다.


안도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실수였다. 적막한 산속에서 내 숨소리는 마치 천둥처럼 울렸다.


“으하하하!”


멀어졌던 발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턱 턱 턱 턱


나는 패닉에 빠졌다. 발소리는 빠르게 다가오더니 내 앞에 멈춰 섰다. 웃음소리도 멈추고, 잠깐 동안 정적이 찾아왔다.


“찾았다!”


눈코입이 없는 끔찍한 얼굴이 내 눈앞에 튀어나왔다. 나는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시골에 머물 수가 없게 됐다. 며칠에 한번 꼴로 해괴한 일을 당하고 그때마다 기절하는 일이 반복됐다.

  

동네 어른들은 내가 도깨비에게 홀렸다며 혀를 끌끌 찼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더 이상 나를 이곳에 둘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난 결국 시골까지 불려온 아버지와 함께 서울로 돌아가게 됐다. 할아버지는 도깨비가 이곳에 터를 잡고 있으니 서울로 가면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내가 떠나는 날, 경석이 형은 무척이나 서운해 보였다. 그날도 산정에서 파란 천이 펄럭였다. 파란 천은 춤을 추듯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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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30 13: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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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too, shall pass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자기소개
사이트 주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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