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애치슨 선언 > 한국사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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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6.25 한국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애치슨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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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치슨 선언(Acheson line declaration, 애치슨선 선언)은 1950년 1월 12일에 발표된,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딘 애치슨에 의해 발표된 선언이다. 여기서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은 그 선언에서 발표된 미국의 동북아시아에 대한 극동방위선을 의미한다.


1950년 1월 10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의 비밀회담에 참석한 애치슨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이 타이완의 동쪽 즉, 일본 오키나와와 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이라고 말하였다. 이틀 후(1월 12일), 외교위원장 톰 코널리는 이를 대외에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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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바와 같이 미국의 방어라인에서 한국이 쏙 빠져있는데, 실리적인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합리적인 라인이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독립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체계도 잡혀있지 않았고, 부흥을 위해서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세계의 원조, 특히 미국의 원조를 받아서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상, 밀면 한번에 밀리는 그런 구조이다. 바로 대륙에 붙은 반도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에비해 일본은 섬나라이고, 아무리 구 소련과 중국이 일본까지 밀고오려고 해도 배로 바다를 건너야 하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다.


즉, 미국입장에서는 태평양을 건너 일본만 잘 지원해주면 소련과 중국의 영역 확정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고


태평양의 장악을 손쉽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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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애치슨 라인이 그어졌을 때, 한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장문의 각서를 미국에 전달하고 진의를 해명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 어떤 대답도 받지 못한채 방치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





Ps. 흔히, 이승만의 업적 중 하나라고 칭송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인 평가로는 업적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들의 주장은 이승만이 애치슨 선언에 미래를 내다보고 우려를 표했지만, 미국의 방치와 그 결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이승만 대통령은 이를 막으려 했지만 어쩔수 없었다. 미래를 내다본 이승만 대통령!! 뭐 이런 논지이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이다.


갓 독립한 나라의 입장에서, 그것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독립을 한 상황에서

자기들 나와바리를 천명하는데 거기에 한국이 쏙 빠져있다?

그건 누가봐도 간이 철렁할만한 이야기고 거기에 반응 못하면 그건 지능이 딸리는 걸 의심해 봐야 할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발표 직후에 한국에서 대응한 외교'는 지극히 정상적인 외교이며 그게 칭찬의 거리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업적이 될만큼의 칭찬을 받으려면 사전에 그걸 인지하고 발표가 나는것을 외교력으로 저지하고, 바꿨어야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나중에 다른 글에서 언급하겠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는 36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식민지 생활을 해 왔었고,

자라나는 새싹들은 전부 일본색에 물들어 있었으며,

그 이전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그런 전근대적인 사상이 꽤나 강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탈을 쓴 왕정국가에 가까웠다.


이 상태에서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이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우리나라는 내정과 외교력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 봐야한다.

딱히 이 부분을 뭐라하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냥 역사의 흐름이다.

많은 식민지 국가들이 그러했고, 개도국이 그러했다.

지금의 진보된 기준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수 없는 짓이 그 당시에는 그냥 자연스러운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그런 삽질들로 인해 미국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외교력의 부재와 발언권의 상실로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미국입장에서는 영양가도 없고 돈만 잡아먹는 하마에다가, 그 대통령이라고 있는 사람은 하는짓마다 미운것들만 골라하는데


그 상황에서 장문의 항의문에 가까운 각서 한장 보낸다고 상황이 바뀌진 않았을 것이다.




즉, 개인적인 결론은


뿌린대로 거뒀다


정도로 생각한다.



참조링크 :: 위키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ko.wikipedia.org/wiki/%EC%95%A0%EC%B9%98%EC%8A%A8_%EC%84%A0%EC%96%B8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4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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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솔로마스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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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들은 김구선생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라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본적이 있다.
물론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내가 로또 걸리면 뭐할까 정도의 기분으로 이야기를 써본다면

뭐 역시나 그리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 임시정부 역시 많은 혼란과 문제점이 내제되어 있었고,
이승만 대통령이 친일파를 품에 안았다면 임시정부는 중국을 품에 안았었다.

어떤가?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하지 않는가?

서로 비슷비슷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 진보계열에서는 우리나라의 적폐로서 친일파를 꼽지만,
만약(?) 김구 선생이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면 지금 현실에서는 대만처럼 친중파가 골치일지도 모른다.

Ps 쓰고보니 또 짜증나는 가정이다. 흐미...
Ps2.그렇다고 임시정부와 김구선생의 그 업적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장담컨대 독립은 불가능 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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