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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팔만대장경은 왜 만들어 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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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 기도하려고 만든게 아님


다양한 목적을 가졌던 범 국가적 사업이었음. 일제가 왜곡.



팔만대장경의 역사를 곡해하는건 사실 근대 식민사학자이자 매국 친일인사인 이케노우치 히로시(池內宏, 이병도)로부터 시작됩니다.


‘불심으로 대동단결’같은 기치는 분명 존재했습니다. 다만 정신승리 운운은 당시의 정치적 배경을 고려하지않은 어용사학자의 망언이죠. 팩트와 픽션이 적절히 가미된 거짓은 때론 진실을 덮어 씌우곤 합니다.


팔만대장경은 11세기에 만들어졌던 초조대장경이 몽골의 침입으로 인해 소실되어 이를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고려는 종교적 색채가 강했던 봉건국가체제 였다보니(왕이 지배하는 전제국이었지만 실상은 대호족과 중소호족이 난립한 봉건국가의 형태) 국력이 쇠퇴하니 불심으로 나라의 근간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사실 팔만대장경 제조는 국가결속을 위한 일종의 대국민결속사업이었습니다.


고려는 원래 정통성과 권위를 강조하는 교종이 득세하였으나 당대의 무신정권은 대중불교이자 개인의 순수함과 선, 성실한 노동을 강조하던 선종계였지요.


(무신정권의 입맛에 맞았다는거지 무신정권이 올바른 지배세력이었다는 얘긴 아닙니다 )


두 종파의 사이는 구태귀족과 무신정권의 사이만큼이나 소원해서 서로 으르렁대기 일쑤였습니다.


무신정권은 국란극복을 위해 교종계와의 협력, 나아가서는 국가적 결속 강화를 위해 교리의 정통성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교종 세력을 끌어들여 팔만대장경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당대의 불교는 지배세력임과 동시에 민중을 선도하는 사회적 계몽집단이자 무장세력이기도 했습니다.


민심이반이 들쑥날쑥할 시절 민중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승려들과 천금을 들여 양성한 귀족사병 못지않은 승병의 전투력은 무시못할 자원이었죠.


한데 종교계의 힘을 빌리자니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데, 사유재산이 허가되지 않은 승려들에게는 결국 승려들이 기거하는 사찰 중심의 보상이 뒤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대장경판(대장경으로 인쇄한 경전) 보유라는 영광과 신도의 증가로 인한 재원확보를 뒷받침해줄 범국가적인 사업이 필요했던거죠. 그게 바로 팔만대장경 역사의 이유였습니다.


펌 : 짱공유 – 댓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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