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호환 창귀 호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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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이전 한반도는 호랑이 ( 범 )과 표범의 천국이었다. 오죽하면 가장 무서운것이 호환(범에 의해 해를 입는 것)과 마마(천연두)라고 했을까.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분포하던 호랑이 종류는 덩치도 무시무시하게 큰 시베리아 종의 호랑이였고, 전 세계 호랑이 친척들 중 가장 큰 몸집을 자랑했었다.
조금만 수틀리면 민가로 내려와 천지를 뒤흔드는 어흥 소리와 함께 사람이나, 목숨보다 아끼던 소를 통채로 물고 담장을 넘어 유유히 사라지는 호랑이는 말 그대로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우리네 조상님들은 호랑이나 표범이나 같은 '범'으로 표현을 하기는 했지만, 사람 잡아먹는데는 표범이 한수 위였을 것이라 보고있다.
특유의 은밀성과 마지막 공격의 순간까지도 아무런 기척없이 등 뒤로 접근이 가능한 그런 종류의 사냥방법 때문인데, 몸집이 작은 아이들과 여자들은 정말로 딱 좋은 먹잇감에 불과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사냥꾼이라고 일컬어졌던 짐 코벳 아저씨도, 우리나라의 소문을 들었다면 다른데 가지않고 당장 우리나라로 달려왔을 만큼 이 표범들의 악독한 행적은 수많은 역사물 속에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먹이가 풍부한 늦봄~늦가을 까지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영역을 넓히고 하더라도 그나마 피해가 적었지만, 먹을것이 압도적으로 부족한 겨울이 오면 이들은 당장 민가로 내려와 사람들을 습격하는 것이 고대로부터의 우리나라 역사인 것이다.
수많은 기록물, 야화 등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은 수없이 언급이 되고 있는데, 바로 창귀와 호식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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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그림 - 표범의 그림 |
창귀에 대한 설화 - 나무위키
- 호랑이가 개를 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먹으면 조화를 부리는데, 호랑이가 사람을 한 번 잡아먹으면 그 사람은 굴각(屈閣)이란 창귀가 되어 호랑이의 겨드랑이에 붙으며, 그가 호랑이를 이끌어 부엌으로 가서 솥을 핥게 하면 집주인이 배고픈 생각이 들어 부인이 야참을 해 오게 만든다.
- 호랑이가 2번 사람을 먹으면 창귀는 이올(彛兀)이 되어 호랑이의 광대뼈에 붙는데, 높은 곳에 올라가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만약 계곡에 함정이나 쇠뇌가 보이면 먼저 가서 그 기구들을 풀어 버린다.
- 호랑이가 3번 사람을 먹으면, 창귀는 육혼(鬻渾)이 되어 호랑이의 턱에 붙어 자신이 아는 사람들의 이름을 죄다 알려 준다.
옛날 선조들이 범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신적인 존재로 묘사했는지를 잘 느낄 수 있는 설화이다.
사람을 유인해 내는 마술도 부리고, 사냥꾼들이 설치해 둔 함정같은것도 모조리 해체해 버리며, 친인척들의 이름과 목소리를 흉내내어 희생자를 밖으로 꾀어낼수도 있는 마물. 그것이 선조들이 보는 '범' 이었다.
실제로는 호랑이에게 물려가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소리를 '창귀가 희생자를 꾀어내기 위해 부르는 소리' 라고 하고는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더 이상의 추가적인 호환을 방지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고, 그런 사람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귀신이 나를 부르는 것이니 절대로 대답하지 말고 인기척을 내지 말라! 얼마나 합리적인가!
그리고 호환에 의해 희생자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따로 '호식총' 이라고 하는 돌무덤을 만들어 접근 불가 지역으로 만들었는데, 이 역시 상당히 슬기로운 행동이다.
호랑이는 떠돌이 생활을 하는게 아니고, 자신의 영역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먹이활동을 한다.
따라서, 한번 이렇게 호환을 당한 자리는 나중에 다시금 호환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잊지 않기 위해서 호식총을 만들고, 대대로 '절대 접근 불가 지역'으로 선포를 하는것은 희생자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삼척을 비롯한 강원도 산악 지역에서는 호식장(虎食葬)이란 독특한 장례 풍속이 있다. 호환을 당한 시신을 사건 현장 ‘호식터’에서 바로 화장해 재로 만든 뒤 상자에 넣어 호식터에 안치한다. 그 위에 돌무덤을 쌓고 시루를 엎어 구멍에 물레용 쇠가락을 꽂아둔다. 지역에 따라 식칼을 쓰기도 하고 시루의 9개 구멍에 전부 가락을 꽂기도 한다. 재로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귀신을 없앤단 의미이며 돌무더기는 서낭당의 돌무더기처럼 부정을 누르고 터부를 알리는 표식이다. 그 위의 시루는 철옹성을 뜻함과 동시에 말 그대로 안에 든 것을 쪄 죽인단 뜻이 있다. 그리고 시루에 난 구멍은 하늘을 의미하니 여기 꽂힌 쇠가락은 벼락을 상징한다. 특히 쇠가락은 물레의 부속품이기에 창귀가 물레 돌 듯 영원히 시루안을 맴돌라는 이중 주술의 의미가 있다. 이런 무덤을 호식총(虎食塚)이라 하며 벌초는 커녕 사람이 얼씬도 해선 안되는 금역의 상징이 된다. 옛 사람들이 얼마나 호환에 시달렸는지, 그로 인한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풍습이다. 호랑이가 사람을 물고 가서 먹는 곳을 호식터 또는 호남(虎囕)이라고 하는데 다른 곳에 비해 삼척을 비롯한 태백산 지역에는 호식총의 분포도가 높은 지역으로 그 유지(遺址)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런 호랑이와 표범의 행동은 크게 두번 위기를 맞는데, 조선 중기~말기가 바로 그 첫번째이다.
그 당시 부터는 우리나라에도 어느정도 총포류 같은 화기가 보급이 되기 시작했고 국가 정책사업으로서 '범 ( 호랑이 + 표범 ) 을 잡으면 신분상승 + 포상금 + 평생 세금 면제'의 무지막지한 혜택을 퍼주기 시작하면서 슬슬 호랑이는 신성불가침의 무언가가 아니라, 걸어다니는 로또 급으로 이미지가 급격히 변하게 된다. ( )이게 되네???
거기에다가, 사냥을 성공적으로 했을 경우, 가죽은 나라에 봉납하더라도, 그 고기와 부산물들은 각종 영약과 정력제로서 날개돋힌듯이 팔려나갔다.
( 호랑이 고기가 정력에 그렇게 좋다고...읍읍읍 )
그리고, 두번째이자 마지막은 바로 일제의 침탈로 식민지배가 이루어 지던 당시, 호랑이에 의해 피해를 받던 일본이 군대를 동원하여 싸그리 호랑이의 씨를 말려버리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 이후로 한반도에서, 특히 남쪽에서는 범 종류가 전멸을 해버렸다. ( 약간 다른 쪽의 이야기로는, 일본에서도 호랑이 가죽은 엄청난 권위와 고가의 약재였고 재력과 무력의 과시용이었기 때문에 조선 침탈 당시 작정하고 싸그리 털어갔다고도 한다. 즉, 피해를 받아서 이를 구제한 것이 아니라, 돈 될만 한게 그냥 산에 있었을 뿐이었던 것. )
어쨋든, 이제 대한민국에서 호랑이는 그냥 동물원에 있는 귀여운(?) 대형 냥냥이에 불과하지만, 잊지말자.
얘네들은 한반도를 주름잡던 최상위 포식자였으며, 등산하다가 간혹 큰 돌무덤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호랑이의 활동영역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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