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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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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단편] 밤마다 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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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이런 도시전설이 있다고 해. 일종의 금기사항 같은거라고나 할까?


숙제는 반드시 손으로 해라. 대충 끄적인 흔적은 알아챈다. 복붙은 더 안 된다.

알람은 한 번만 맞춰라. 반복 알람을 맞추면, 네 대신 다른 무언가가 일어난다.

저녁 식사는 식구와 같이 해라. 혼자 먹는 날이 많아지면, 식탁 밑에서 기다리는 것이 있다.

거울 앞에서 핸드폰으로 시간 때우지 마라. 12시가 넘으면 네 뒤에 다른 표정이 비친다.

일기장은 비워두지 마라. 네가 안 쓰면, 걔가 대신 쓴다. 걔는 거짓말을 못 한다.

밤 10시 전엔 불을 꺼라. 불을 켠 채로 졸면, 어둠보다 더 어두운 것이 방 안에 생긴다.


대충 살지 마라. 대충 산 날은, 걔가 조금 더 가까워진다.


무슨 옛날 조선시대 괴담 같은게 현대판으로 업그레이드 된것만 같은 이야기라 코웃음 치고 넘겼었는데,

이걸 읽고 나서부터 뭔가가 내 일상에서 거슬리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어.


왜 그런날 있잖아?


침대에 누워서 잠들기 전까지 폰으로 놀다가 잠에 곯아떨어지는 그런 날 말이야.

처음엔 그런건가 보다 하고 생각했어.


웬지 더 피곤한 몸을 일으켜 책상을 봤을 때 평소보다 조금 더 어질러져 있는 느낌을 받거나,

웬지 방바닥이 조금 축축한 부분을 느끼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리고 그런날은 꼭 핸드폰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어 있거나 1%였어.

뜨끈뜨끈한 핸드폰은 마치 내가 눈 뜨기 직전까지 마치 누가 내 폰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순간

등줄기에서 뭔가 시원한게 한줄로 쭉 훑고 내려가는 그런 기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거야.


자다가 몸을 뒤척이면서 폰을 다시 건드려서 켜 질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다시 폰이 열을 낼수도 있는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일이 반복될 때 마다 점점 찜찜해지는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없었어.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떤 날이었을까? 

어느 날부턴가 내가 안 했는데도 숙제가 제출돼 있었어.

심지어 선생님이 말하더라. "이렇게 진지한 글은 처음 봤다"며 칭찬까지 했어.

어라? 내가 했던가? 아닌데? 했나? 게임하고 폰 만지고 친구들이랑 톡 하다가 그냥 잠들었던거 같은데..? 아닌가?

혼란스러웠어.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좀 특별하고 이상한 꿈을 꿨어.

꿈에서 어떤 그림자를 봤는데, 눈코입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

왜 꿈이라는게 다들 그렇잖아? 깨는 순간 잊어버리는게 꿈이잖아?

그런데 나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어. 그건 나였어.


그리고 또 다른 내가 말했어.


“너는 쉬어. 내가 해줄게.”


무슨 뜻이었을까?

악몽을 꾼것처럼 으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깨지도 않았지만,

아침에 눈을 뜨고 그 꿈을 생생하게 떠올렸을 때 나는 뭔가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꼈어. 그때의 공포란.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어. 다음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으려고 책상 서랍에 손을 넣었을 때,

나는 거기에 없어야 할 내 비밀 일기장이 들어있는걸 발견했어.

비명같은건 나오지 않았어. 그냥 어? 어어어? 정도였을까?


하지만 내가 첫장을 넘겼을 때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어.

그 공책의 빈 공간에는 빽빽하게 손톱자국이 나 있었어.

무슨 공포영화처럼 손톱이 빠져가면서 핏자국이 나있는 그런 손톱자국은 아니었지만

꼼꼼하게 꼼꼼하게 빈 페이지에는 모두 적당히 눌린 손톱자국이 빼곡했어.


그리고 거기에는 평소같으면 내가 절대로 하지 않았을 말들이 몇줄씩 모든 페이지 마다 적혀있었어.


“나는 내가 싫다.”

“그냥 누가 날 대신 살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았으면 좋겠어.”


친구들과 선생님이 놀라서 무슨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냥 별거 아니라고 얼버무릴 수 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스쳐가듯 보기에도 그 글씨체들은 분명히 내 글씨체였거든.


그리고 그 날 밤부터가 아닌가 싶어.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매일 밤마다 누군가 내 방문 앞에 와.

문을 열면 아무도 없지만, 분명히 난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하루 하루가 갈수록 문 앞에 바닥이 점점 축축해지는건 내 착각일까? 그랬으면 좋겠어.

그게 그냥 누가 물 같은걸 쏟은게 아니라 점점 더 사람 발자국 모양 같은 느낌이 들어도 그 전부가 다 착각이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이걸 누가 믿어주겠어?

점점 더 내가 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서 칭찬을 점점 많이 받는 만큼 나는 더욱 더 불안해 질수 밖에 없었고

이제는 가끔 학교나 밖에서도 점점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이 생기는거 같아.


자기전에 폰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아도 이제는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알아.

그런 조그마한 일들로는 이제 더 이상 이 무언가를 막을 수 없다는 것도 말이야.


이젠 잘 알 것 같아.

걔는 대충 사는 애들을 좋아해.

그리고 그 삶을 “대신 살아줄게” 라고 말하면서

천천히, 조용히, 대신 살아가.

대신 숨 쉬고, 대신 웃고, 대신 학교에 가고…


그러다 어느 날

진짜 너는 사라지고,

걔만 남아.


지금 이 글을 보는 너.


오늘 하루,

너답게 살았어?


아니면…

걔가,

오늘도 한 걸음

더 가까이 왔을까?


그리고 지금 이 글의 마지막을 쓰고 있는 나는...

진짜 나인걸까?



댓글목록1

WilliamCho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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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에 빠진 딸내미를 위해 끄적여 보는 공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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