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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비동의 강간죄 도입되면 '동의 없었다'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

송고시간2023-02-06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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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줄 요약

여성가족부가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한 지난달 26일 이른바 '비(非)동의 강간죄'가 화제로 떠올랐다.

여가부가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현재의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비동의 강간죄의 도입을 시사했다가 법무부의 반대로 이를 철회하면서다.

과연 반대론의 논거대로 비동의 강간죄가 도입되면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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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모 기자
구정모기자

여가부, 도입 시사했다가 법무부 반대하자 철회…'동의 여부 어떻게 확인하나'가 쟁점

현행 형법은 '폭행·협박' 없으면 강간 인정 안해…해외선 '동의'를 요건으로 보는 추세

영국선 '폭력·납치 상황 또는 피해자가 의식 잃거나 약물 투여한 경우'로 구체화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여성가족부가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한 지난달 26일 이른바 '비(非)동의 강간죄'가 화제로 떠올랐다.

여가부가 형법상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현재의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비동의 강간죄의 도입을 시사했다가 법무부의 반대로 이를 철회하면서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비동의 간음죄 도입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비동의 강간죄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를 처벌하기 위해 도입된 개념이다.

현행 형법 제297조는 강간죄를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경우로 정의해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돼야 한다.

이 때문에 과거부터 여성계를 중심으로 비동의 강간죄의 신설 요구가 있었으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아 번번이 도입이 좌절됐다.

성관계 동의가 내심(內心), 즉 속마음의 문제여서 이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이에 따라 '나는 동의한 바 없다'는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강간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대의 주된 논거였다.

권 의원이 당시 페이스북에서 "동의 여부를 무엇으로 확증할 수 있습니까"라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연 반대론의 논거대로 비동의 강간죄가 도입되면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가 될 수 있을까. 시행도 되지 않은 법 조항의 효력을 검증할 수는 없지만, 이미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외국 사례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는 있다.

비동의 간음죄 (CG)
비동의 간음죄 (CG)

[연합뉴스TV 제공]

◇ 현실 못 따라가는 형법상 강간 규정…폭행·협박 없으면 강간 아냐

비동의 강간죄 도입론이 대두한 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현행 강간죄 법령이 실제 강간으로 고통받는 여성의 현실을 온전히 포괄하지 못한다는 반성이 그것이다.

이는 대법원이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과 협박의 의미를 가장 좁게 해석한 영향이 크다.

대법원은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행·협박은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며 이른바 '최협의'의 폭행을 고수하고 있다.

형법에서 폭행은 통상 최광의, 광의, 협의, 최협의 등 4단계로 구분되는데, 대법원은 강간죄와 강도죄에 적용되는 폭행은 이중 최협의의 폭행으로 해석한다.

이와 달리 형법 제260조에는 폭행죄가 있는데 이때 폭행은 '협의'의 의미, 즉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 대법원은 판단하고 있다. 즉 사람의 신체에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유형(有形)의 힘이라면 폭행죄상 폭행이 된다.

그러다 보니 폭행죄에 해당하는 수준의 폭행으로 성관계를 강요했다면 폭행인데도 최협의의 폭행은 아니기 때문에 법리적으론 강간죄가 아니란 결론이 도출된다.

이는 실제 법원 판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강간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판결문을 보면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해 피해자를 간음한 것에 불과하고, 그 유형력의 행사가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른 것은 아니므로"라는 취지의 표현은 숱하게 등장한다.

상식의 차원에서 강간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간음한 행위'로 본다면 법리적으로도 그래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셈이다.

이런 간극은 대법원이 판례를 통해 형법상 '강간과 추행의 죄'를 "개인의 성적 자유 또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죄로 설명한다는 점에 비춰보면 더 또렷해진다.

대법원은 성적 자유를 "원치 않은 성행위를 하지 않을 자유"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성행위를 할 것인가의 여부, 성행위를 할 때 상대방을 누구로 할 것인가 여부, 성행위의 방법 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해석했다.

강간죄에 대한 대법원의 개념 규정과 실제 법 조항 간 괴리가 큰 셈이다.

이런 법 조항은 여성이 마주한 현실과도 거리가 멀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비동의 간음죄의 비동의 판단기준 마련을 위한 국내외 사례연구'(2020년)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월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 소속 상담소 66곳에 접수된 사례를 분석한 결과 폭행이나 협박이 행사된 피해 사례는 28.6%에 불과했다. 나머지 71.4%는 직접적인 폭행이나 협박 없이 강간 피해가 발생했다.

연구원은 그런 사례로 피해자가 술에 취한 때처럼 무방비 상태에 있는 경우, 피해자가 금전적인 이유로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경우, 종교 지도자와 신도 간 관계와 같이 가해자가 권력의 위치에 있는 경우 등을 들었다.

현실에서 강간은 폭행과 협박 없이 더 많이 일어나지만 현행법은 이를 강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미투' 법적 뒷받침 미흡…"비동의 간음죄 도입해야" (CG)
'미투' 법적 뒷받침 미흡…"비동의 간음죄 도입해야" (CG)

[연합뉴스TV 제공]

◇ 해외선 비동의 강간죄 국제기준으로 자리 잡아…독일·영국·스웨덴 등 도입

동의 여부로 강간죄를 따져야 한다는 입장은 근래 들어 국제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는 추세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2021년 채택한 여성폭력특별보고관의 보고서는 강간의 정의에 '동의 없음'이 포함되도록 명문화할 것을 모든 국가에 권고했다.

이에 앞서 2018년 3월엔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우리나라에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의 부재'로 개정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외국 사례를 봐도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 동의 여부를 강간죄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일본도 최근 폭행과 협박이 없더라도 상대의 동의 의사 표명이 곤란한 상태에서 성행위를 하면 강간죄가 성립하도록 형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다만 이때 어떤 의사표시를 동의로 볼 것이냐에 대한 원칙은 크게 둘로 나뉜다.

통상 동의 여부는 '거절은 거절이다'(No means No)라는 소극적 동의와 '동의해야 동의다'(Yes means Yes)라는 적극적 동의로 나뉜다. 소극적 동의 관점에선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하고, 적극적 동의에선 행위자가 상대방의 동의 의사를 확인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소극적 동의는 독일이, 적극적 동의는 스웨덴이 대표 사례다.

독일은 2016년 11월 시행된 개정 형법에서 "타인의 인식 가능한 의사에 반해" 실행된 성적 행위를 강간죄로 규정하고 있다.

스웨덴은 2018년 7월 발효된 개정 형법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행위를 강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박지현 인제대 교수는 '비동의 강간죄의 입법과 해석을 위한 제언'(2020년)에서 "'No means No' 원칙이 '싫다고 하면 행위를 멈추라'는 것이라면 'Yes means Yes' 원칙은 '좋다고 하는 때만 행위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No means No' 원칙에선 행위자에게 상대방의 의사를 물을 의무가 없지만 'Yes means Yes' 원칙에선 그럴 의무가 부과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영국, 성관계 동의할 '자유·능력' 없는 경우를 구체적으로 규정

동의 여부를 강간죄의 구성요건으로 삼은 국가들에서 동의 여부를 어떤 식으로 확인하고 있을까.

적극적 동의 방식을 채택한 영국의 경우 동의와 관련한 규정이 구체적이어서 참조할 만하다.

2003년 개정된 영국 성범죄법은 동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선택으로 합의할 때"로 정의하고 있다. 선택의 '자유'와 '능력'이 관건인 셈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형법상 성폭력범죄의 판단기준 및 개선방안'(2018년)에 따르면 영국 성범죄법은 동의를 이같이 규정하면서 선택의 자유와 능력이 제한된 상황을 열거하고 있다.

이 법은 선택의 자유가 제한된 상황으로 ▲ 피해자 자신 또는 제3자에게 폭력이 가해지거나 가해질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 ▲ 납치되거나 불법적으로 구금된 경우로 명시했다.

또 선택의 능력이 제한된 상황으로는 ▲ 피해자가 잠들거나 의식이 없는 경우 ▲ 피해자가 신체적 장애로 인해 동의 여부에 대해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경우 ▲ 가해자가 동의 없이 피해자에게 물질을 투여·복용하게 해 피해자를 몽롱하게 하거나 제압하는 경우를 들고 있다.

검사가 성행위 당시 이런 상황이었다는 것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하면 피해자의 동의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우려하듯 피해자가 단지 사후에 '동의가 없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곧장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성폭행범죄 처벌을 요구하는 스웨덴 여성들 시위
성폭행범죄 처벌을 요구하는 스웨덴 여성들 시위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 국내서도 비동의 강간죄 도입 추진 중…요건 명확히 하면 우려 불식시킬 수도

'미투 운동', 'n번방 사건' 등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비동의 강간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형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된 안건 기준으로 3개가 있는데, 각각 더불어민주당의 백혜련·소병철 의원,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백혜련·소병철 의원 안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간음'한 행위를, 류호정 의원 안은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교'한 행위를 각각 강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전자는 소극적 동의를, 후자는 적극적 동의를 채택한 셈이다.

국회 회의록을 보면 지난해 11월 28일 열린 법사위 소위 제5차 회의에서도 '동의'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가 반대론의 핵심이었다. 이와 더불어 가해자가 사실상 입증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하지만 외국의 입법례에서 보듯이 동의 문제는 동의 여부를 판단할 만한 객관적 정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면 '피해자 마음대로' 식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현행 형법에도 동의와 유사하게 내심의 의사를 지칭하는 '승낙', '촉탁'과 같은 개념이 쓰이고 있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예컨대 형법 제24조는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해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전윤경 한양대 법학전문대학 교수는 '현행 성범죄의 처벌규정 체계의 재구조화 방안'(2022년)에서 비동의를 강간의 요건으로 삼을 때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하면 곧바로 유죄의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오히려 유형력이 수반되지 않는 성범죄의 경우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우므로 관련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정황 증거를 더욱 풍부하게 수집하고 이를 정확하게 해석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비동의 간음죄 도입 국회 토론회
비동의 간음죄 도입 국회 토론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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